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런 코플런드 (문단 편집) == 생애 == [[1900년]]에 [[뉴욕]] 주 [[브루클린]]의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3살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하던 그는 17세에 루빈 골드마크(Rubin Goldmark)에게 화성학과 작곡법을 배웠다. 그러나 코플런드는 그의 고전 음악 위주의 수업에 반발했고 새로운 음악을 배우기 위해 [[파리(프랑스)|파리]]로 건너갔다. 1920년 파리로 건너간 그는 당시 최고의 음악 교육자인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 작곡가이자 교육자였다. 여동생인 [[릴리 불랑제]](Lili Boulanger 1893~1918)도 역시 작곡가였다.] [* 코플런드 외에도 그녀가 길러낸 음악가들 중 대단한 인물이 많다. 지휘자 존 가디너 경, [[아스토르 피아졸라]], [[필립 글라스]]등.]를 사사했다. 유럽에 머물면서 그는 현대 예술을 새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미국 문화와 현대 음악의 결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작곡과 강연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그때 미국은 [[대공황]] 때문에 그는 영화 [[오리지널 스코어|스코어 음악]]을 작곡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초기 음악은 유학 시절의 영향을 받아 현대적인 색채가 강한 편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미국만의 음악을 만들고자 노력해 선배 작곡가 [[조지 거슈윈]], [[찰스 아이브스]]등의 음악을 탐구하기도 했다. 1930년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 의해 미국 사회에 [[대중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코플런드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대중을 위한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를 위해 그는 미국음악의 뿌리를 찾기 위해 [[재즈]], [[포크]] 등 다양한 음악을 탐구하고, 이러한 음악 탐구는 1936년 '엘 살롱 멕시코', 1938년 발레 '[[빌리 더 키드]]'로 나타나게 되고 이 작품들은 그를 미국음악의 대표주자로 만들어주었다. 코플런드는 이러한 유명하고 친숙한 작품들을 쓰기 이전에도 미국 현대음악의 기수로서 저명한 인물이었음에도 자금 사정이 극히 좋지 않았지만, 그의 스타일이 단순하고 쉬워지면서 그는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 2차대전 중에도 침공이 없던 미국 본토에 있었기 때문에 작곡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때에는 발레 '로데오, '아팔래치아의 봄' 등 더욱 미국적인 음악과 '보통 사람들을 위한 팡파르', '링컨의 초상' 등 애국적인 작품을 쓰는데 몰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까지 그의 전성기는 이어졌다. 1945년 '애팔래치아의 봄'으로 [[퓰리처 상]]을 받고 이듬해에 교향곡 3번, 1948년 클라리넷 협주곡 등 걸작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그는 많은 인기와 호평을 얻는다. 단명한 거슈윈이 죽은 이후에 그는 명실공히 미국 음악의 대표 주자였으며, 많은 공식 자리에서도 미국 작곡가를 대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조지프 매카시]]. 코플런드는 젊은 시절 좌파적 색채가 너무 강했으며, 전쟁기에도 소련을 돕는 기금 조성 활동에 지나치게 열심히 매달리는 등 여러모로 꼬투리를 잡힐만한 일들을 많이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매카시에 의해 [[빨갱이]]로 몰린 코플런드는 반미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공식석상에서 그의 작품의 연주가 취소되는 등 위기를 맞았지만 얼마 안가 [[매카시즘]]이 한물가면서 다시 그의 명예는 복원되었다. 후기에 접어들면서 코플런드는 다시 초기의 현대적 색채로 돌아간다.[* 이 무렵 젊은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피에르 불레즈]]를 직접 만나는 등, 유럽의 새로운 조류와 마주하면서 여러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초기와 달리 후기에는 미국음악을 현대적으로 표현해내는 데 중심을 두었다. 또한 자신의 곡을 직접 지휘, 여러 편의 음반으로도 발매하였다. 70년대까지 작곡을 이어나가던 코플런드는 80년대 건강이 악화된 이후 1990년 지병이 악화되어 9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